아침 7시, 밥그릇 앞에 앉지 않게 된 손
아침이 오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사료를 푸는 일이었다.
물그릇을 갈고, 밥을 담고, 간식을 덜어두며 그 아이의 하루를 준비하는 것으로 나의 하루도 시작되곤 했다.
이제는 그 밥그릇이 비어 있다. 물도 마르지 않고, 간식은 줄 필요도 없다.
무심히 지나치려 해도 손이 먼저 기억한다.
습관처럼 부엌으로 향하다가 문득 멈춘다. 그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아침마다 새로이 체감한다.
사료 봉지를 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침은, 조용해서 더 아프다.
그리고 나는 그 조용한 아침 속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해졌다.
그 아이를 돌보던 손을, 이제는 나에게 다시 돌려야 하는 시점이었다.
무너진 루틴 속에서 내가 무너졌다
한참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어날 이유도 없었고, 먹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밤에는 그 아이의 소리가 들릴까 봐 무서워했고, 낮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 괴로웠다.
식사를 챙기지 않았고, 샤워를 미뤘으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 아이가 찍힌 사진을 몇백 장씩 넘겨보다가 무너졌고,
비슷한 사연을 가진 블로그를 찾아 헤매다가 새벽이 되기도 했다.
나는 분명 살아 있었지만, 살아내는 방법을 몰랐다.
그 아이가 있을 땐,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늘 누군가를 먼저 챙기며 살아왔기 때문에, 나 자신은 뒷전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밖에 없게 되니, 돌봐야 할 존재가 ‘나’라는 사실이 낯설고 막막했다.
첫 번째로 다시 챙긴 한 끼
문득 배가 고팠다.
밥을 먹어야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몸이 힘들다고 말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오랜만에 냉장고 문을 열었고, 있는 재료로 계란국을 끓였다.
평소였다면 챙기지 않았을 한 끼지만, 그날은 그 한 끼가 나를 살렸다.
밥을 다 먹고 나서야 눈물이 났다.
그 아이가 사라지고 처음으로 ‘나’를 위한 밥을 지은 날이었다.
이유도 모르게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함께했다.
나를 돌보는 일이 배신이 아니라는 걸, 아주 작게라도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하루 한 끼라도 직접 챙겨 먹자고 결심했다.
간단하더라도 불을 켜고, 냄비를 올리고, 음식을 덜어내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감정의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손목에 남아 있던 너의 체온 대신, 따뜻한 물
그 아이를 안고 걷던 시간이 매일 10분 이상은 있었고,
작은 산책에서도 손목에 리드줄이 감기던 감각은 여전히 선명했다.
그 온기를 지우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 사이 나는 따뜻한 물로 손을 씻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처음엔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아 손을 씻는 일조차 귀찮았다.
하지만 따뜻한 물이 손끝을 감싸는 순간마다
내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뜨거운 물은 감정을 지워주진 않았지만, 잠시나마 안정을 주었다.
그 후로 손을 씻을 때면, 향기 좋은 핸드워시를 쓰기 시작했다.
익숙한 강아지 냄새 대신 라벤더와 머스크 향이 손끝에 남았다.
그 감각은 슬픔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평온이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분명 나는 나를 돌보고 있었다.
다시 마주한 거울 앞에서
거울을 오랫동안 보지 않았다.
그 아이가 있을 땐 매일 나를 보며 정돈하던 머리, 옷, 표정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떠난 후로 거울 속 나는 자꾸만 무너져 보였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앞에 섰다.
눈은 충혈돼 있었고, 피부는 푸석했고, 옷은 구겨져 있었다.
거울 속 나는 단지 슬픈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놓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거울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작은 클렌징부터 시작했다.
얼굴을 닦고 로션을 바르고, 립밤을 발랐다.
화장을 하진 않았지만, 얼굴을 쓰다듬는 그 손길이 나를 다시 연결시켰다.
그 아이는 내 모습을 항상 좋아해줬다.
나는 그 기대에 보답하듯, 다시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네가 있었던 공간을 다시 정리하다
네가 사용하던 방석, 장난감, 사료통, 목줄, 그리고 유골함까지
내 방 한구석에 놓인 모든 것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 공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그 공간을 외면할수록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하루는 마음을 먹고 하나하나 닦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장난감은 깨끗이 씻어 유기견 보호소에 기부했고,
사료는 가까운 지인에게 나눴다.
너의 물건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너의 시간을 잘 정리하는 마음으로 움직였다.
정리를 마친 후, 그 자리에 조그마한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나를 위한 책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너의 사진을 한 장, 따뜻한 조명 아래에 세워두었다.
그 공간은 네가 잠들어 있는 곳이자, 내가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한 공간이 되었다.
너를 위해 했던 것들을, 나에게로
하루 세 번 챙겼던 식사, 물 갈기, 기온 체크, 간식 정리, 샴푸, 발톱 정리…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너를 돌봤다.
이제 그 정성을 나에게도 써야겠다고 느꼈다.
매일 아침 물을 갈아 마시고, 피부에 바람을 쐬고,
가끔은 산책 대신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을 만들었다.
불규칙했던 수면은 조금씩 규칙적으로 바뀌었고,
네가 자던 시간에 나도 잠을 청하는 습관이 생겼다.
너를 위해 했던 수많은 작은 행동들이
이제는 나를 살리는 루틴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방법
펫로스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질 뿐,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슬픔 속에서도 ‘살아내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억지로 위로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흘려보내면서
매일 하나씩 내 삶을 복구해나갔다.
오늘도 나는 조금은 지친 얼굴로, 하지만 조금 더 가벼운 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아이가 사랑하던 사람으로, 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나는 또 한 번 나를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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