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장례

작은 방에 남겨진 기억으로 작업 공간을 만들다

raenews 2025. 7. 5. 12:56

익숙한 공간이 낯설어진 이유

방 하나가 비었다.
그 아이가 떠난 후부터 그 방은 문이 닫힌 채로 남겨져 있었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왔지만, 나는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문을 열면 익숙한 냄새가 떠올랐고,
작은 소리에도 그 아이가 달려오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정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손을 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움직이는 순간, 그 아이의 흔적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고,
방에 남은 모든 것들이 그 아이와 나 사이를 연결해주는 마지막 끈처럼 느껴졌다.

그 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함께했던 계절과, 나눈 시선과,
밤마다 들려오던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 공간을 볼 때마다, 마치 아직도 그 아이가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더더욱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반려동물 사망 후 일상으로의 복귀

용기를 낸 어느 오후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던 어느 오후였다.
무언가 달라진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마음이 흔들렸다.
창밖으로 바람이 드는 걸 보며,
‘이젠 이 방의 창문도 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 하나로 나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냄새가 확 밀려왔다.
그 아이가 쓰던 방석, 정리되지 않은 담요, 사료통 옆에 굴러다니던 장난감.
모두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그 방 안에서,
나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그 방에 앉아 있었다.
햇살은 바닥에 길게 내려와 있었고,
먼지 낀 장난감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공간을 나를 위한 공간으로 바꾸자고.
네가 남긴 따뜻함을 품은 채, 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반려동물이 남겨놓은 물건을 정리하는 마음

정리는 생각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하나하나 손에 쥘 때마다, 그 아이와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바스락거리는 장난감 소리, 산책 후 닦던 수건,
먹다 남은 간식 봉투에 남은 냄새.
모두가 그 아이를 증명해주는 존재 같았다.

한동안은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이 공간을 만지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선택했다.
버리는 대신, ‘보내는’ 방식으로 정리하기로.

조심스레 박스를 골랐고, 가장 좋아했던 인형 두 개는 남겨두었다.
나머지는 깨끗이 세탁한 뒤 유기견 보호소에 기부했다.
사료는 지인에게 전해줬고, 사료통은 깨끗이 씻어 뚜껑을 닫았다.

그 아이의 유골함과 사진은 따뜻한 느낌의 작은 원목 테이블 위에 옮겼다.
방향제를 치우고, 작은 조명을 놓았다.
그 자리엔 이제 향 대신 그리움이 머물렀다.
그건 무거운 그리움이 아니라, 부드럽게 스며드는 기억이었다.

 

 

가구를 바꾸고, 조명을 들이다

이제 조금은 비워진 방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 공간에 무엇을 넣을 수 있을까.
무엇을 놓아야 내가 다시 숨 쉴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의자 하나만 들여놓았다.
벽 쪽에 작은 책상 하나를 들였고, 서랍장 위에 따뜻한 조명을 올려두었다.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메모장과,
몇 달 전부터 읽지 않던 책을 책상 위에 놓았다.

변화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찾아왔다.
책상 앞에 앉은 나의 손끝에서 무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 공간은 내가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되어주었다.

벽에 작은 시계를 걸고, 커튼을 새로 달고,
창문 가까이에 화분을 하나 들여놓았다.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냄새 맡으며 킁킁거렸을 식물이다.
그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웃을 수 있었다.

 

 

반려동물과의 기억을 간직한 작업 공간

책상 위에는 따뜻한 색의 조명이 있다.
그 옆엔 그 아이가 환하게 웃던 사진 한 장이 놓여 있다.
프레임은 작지만, 사진 속 그 미소는 방 안을 충분히 밝힌다.

그 사진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그 아이가 지금 이 공간을 본다면,
아마도 안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이 공간에 앉는다.

이제는 매일 아침 커피를 끓이고, 책상 앞에 앉는다.
그 아이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들이지만,
그 아이와 함께했던 기억을 품은 시간들이다.

 

 

내가 살아가는 자리

이 방은 나를 위한 공간이지만,
그 아이가 나에게 남겨준 마지막 선물 같기도 하다.
그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이 공간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 방은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라, 내가 다시 일어서기 위한 공간이다.

슬픔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진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울음을 참지 않는다.
눈물이 흐르면 그냥 흐르게 둔다.
그리고 그 눈물 위에 다시 오늘의 일상을 쌓는다.

하루하루 이 공간에 앉아 나를 쌓아올린다.
그 아이를 기억하면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조금씩 나를 회복시킨다.

 

 

언젠가는 당신도 이 방에 들어설 거예요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떠난 뒤의 공간은
그 자체로 큰 감정의 덩어리다.
그곳엔 함께한 시간이 숨겨져 있고,
그리움이 그림자처럼 머문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말로 언젠가는
당신도 그 방의 문을 열게 될 거예요.
조금은 망설이겠지만, 그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방에 들어선 당신은
이제 그 아이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와의 기억을 더 깊이 품는 과정을 시작하게 될 거예요.

나는 그 과정을 거쳤고,
이제는 매일 그 방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요.
당신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는 걸 믿어요.
조급하지 않아도 돼요.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우리를 앞으로 데려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