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장례

그 아이가 사라지고 난 후, 나는 잠들지 못하는 밤을 버티기 시작했다

raenews 2025. 7. 7. 13:26

입맛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사라진 순간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날 이후,
나는 배가 고프다는 감각조차 느낄 수 없었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시간은 흘렀지만,
식탁에 앉을 이유가 사라졌다는 느낌만이 짙게 남았다.

냉장고 속 음식은 점점 상해갔고,
싱크대에는 그 아이의 물그릇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릇 하나를 치우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치운다는 것은, 정말로 '떠났음'을 받아들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슬픔을 '감정'이라 말하지만,
내게 그것은 하나의 ‘신체 증상’이었다.
숨이 가빠지고, 입맛이 사라지고,
음식이 목에 걸리는 듯한 답답함이 이어졌다.

이별은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몸 전체가 상처 입은 것처럼 느껴졌고,
특히 '먹는다'는 행위는
너무나 인간적인,
그러나 그 시기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잔인한 일이기도 했다.

 

반려동물 사망 후 식욕부진

슬픔은 혀끝까지 파고든다

사별 이후 몇 주 동안 나는 단맛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쓴맛은 유난히 예민해졌고,
따뜻한 국물조차 입속에서 '텁텁한 물'처럼 느껴졌다.

심리학자들은 극단적인 슬픔이 미각 감각 자체를 왜곡시킨다고 말한다.
우리는 뇌의 해마와 편도체에서 감정과 감각을 통합해 인식하는데,
펫로스처럼 정서적으로 충격이 큰 사건 이후에는
감각을 받아들이는 회로가 불안정해져
맛, 냄새, 촉감까지 흐릿하거나 왜곡되기 시작한다.

특히 ‘함께 밥을 먹던 기억’이 깊은 보호자일수록,
식사의 시간이 감정 회피의 시간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단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그 아이가 곁에 없어지는 그 한 끼가
너무 선명한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별 이후의 식사는 ‘행위’가 아니라 ‘확인’이다

나는 그 아이와 늘 함께 식사를 했다.
내가 밥을 먹을 땐 그 아이도 사료를 씹었고,
입에 음식을 넣으면, 그 아이도 내 표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떠난 후의 식사는
단순한 허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그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나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이 작은 풍경이
어쩌면 그 어떤 장례식보다도
더 강렬한 이별의 의식이었다.

많은 보호자들이 말한다.
식사는 여전히 힘들다고.
차려놓은 밥을 한 입도 못 먹은 채 일어난다고.
그건 당신이 약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깊이 사랑했고,
그만큼 함께한 시간이 오롯했기 때문에
이별이 일상의 모든 조각에 박혀 있는 것이다.

 

 

억지로 먹는 것도 회복의 시작이었다

사별 2주 차.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움이 반복되자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단순히 “과도한 스트레스”라 했고,
나는 집에 돌아와 미지근한 미역국을 끓였다.

그 아이가 아팠던 시기에 만들어줬던 국이었다.
입에 한 숟갈 넣자 눈물이 났다.
맛을 느낀 건 아니었다.
다만 그 국을 통해,
한때 내가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는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국 하나만은 매일 끓였다.
그게 밥이든 죽이든 상관없었다.
끓인다는 행위 자체가,
내가 여전히 누군가의 보호자였다는 사실을
내게 되돌려주는 과정 같았다.

먹지 못해도 괜찮았다.
그릇을 식탁에 올려두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건 ‘밥을 먹는 사람’이 되기 위한,
작고 조용한 선언이었다.

 

 

보호자를 위한 식사 루틴 – 감정과 함께하는 최소한의 회복법

펫로스를 겪는 보호자에게 추천되는 식사 루틴은
'정상적인 식사'가 아니라,
감정을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의 생존 루틴이다.

다음은 실제 심리상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슬픔기 식사 루틴의 핵심이다.

  1. 자신에게 친숙한 음식부터 시작할 것
    – 새로운 음식은 감정적 부담이 크다.
    – 추억이 담긴 음식이라면 더 좋다.
  2. 시간을 정해 두고, 반드시 식탁 앞에 앉을 것
    – 먹지 않더라도 앉는 행위 자체가 루틴의 핵심이다.
  3. 혼자 먹는 게 힘들다면 '소리'와 함께할 것
    – 조용한 음악, ASMR, 라디오가 도움이 된다.
  4. 메모를 통해 자신이 ‘먹은 날’을 기억할 것
    – 못 먹은 날보다 먹은 날에 집중하자.
    – 회복은 숫자가 아니라 감각이다.
  5. 식사 중 떠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말 것
    – 울어도 괜찮고, 멈춰도 괜찮다.
    – 억지로 ‘밝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이 루틴은 식욕을 되찾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돌보기 위한 연습이다.

 

 

회복은 어느 날 ‘맛’을 되찾는 것으로 찾아왔다

슬픔이 조금씩 가라앉아가던 어느 날,
아침 식탁 위에 올린 토스트 한 조각이
생각보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잼의 단맛이 미묘하게 전해졌다.

그 순간, 나는
"맛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용히 웃을 수 있었다.

그건 내가 다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증거였고,
마음 어딘가가 조금은 살아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식욕이 돌아오는 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감정이 더 이상 음식 앞에서 주저앉지 않기 때문이다.
슬픔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감정과 함께 식사를 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기 때문이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시절을 걷고 있는 당신에게

지금 밥 한 끼가 힘든 보호자가 있다면,
누군가 당신에게 "이제는 먹어야지"라고 말한다면
잠시 귀를 닫아도 좋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그 공허함을
당신은 지금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먹지 못하는 날도 괜찮다.
단지 식탁에 앉기만 해도 괜찮고,
컵에 물을 따르고 그걸 마셨다면
그건 회복의 시작이다.

식사는 기억이고, 식사는 사랑이고, 식사는 삶의 의지다.

지금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입안에 따뜻한 맛이 퍼질 그날,
당신은 조용히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다시 살아가는 중이라고.
그리고 그 아이의 기억은
당신 안에서 조용히 살아남아
당신을 이렇게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