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장례

다시 맞이한 계절, 너 없는 봄을 걷다

raenews 2025. 7. 6. 21:08

봄이 오기 전, 나는 두려웠다

계절이 다시 돌아온다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함이 이렇게 두려울 줄은 몰랐다.
너 없는 봄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한동안 믿지 못했고,
마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봄은 늘 너의 계절이었다.
따뜻해지는 공기 속에서 산책하던 너의 발걸음,
햇살이 머리를 감싸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듯 누웠던 모습,
창밖을 바라보며 꼬리를 천천히 흔들던 너의 오후.

그 모든 것이 봄의 일부였고,
봄은 곧 너였다.

그래서인지 봄이 온다는 예보는
누구에게는 희망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슬픔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계절이
이제는 가장 아플 계절이 되어버릴까 봐,
나는 봄을 기다리지 않았다.

 

반려동물 사망 후 일상으로의 회복

‘너 없이’ 처음 맞는 계절이 시작되었다

3월의 바람이 따뜻해졌고,
길가에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도시의 나무들은 느릿하게 녹색으로 물들었고,
햇살은 다시 눈부셨다.

모두가 봄을 맞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겨울 안에 머물러 있었다.
몸은 움직였고 시간은 흘렀지만,
마음은 여전히 너의 마지막 날에 멈춰 있었다.

그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현실이 되었다.
처음엔 그리움이 컸고,
이제는 그리움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 과정은 조용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내 안의 ‘계절 차이’였다.

너는 여전히 내 안에 있었지만,
너 없이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이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계절의 반복 속에 감정의 흐름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계절성 감정 변화(Seasonal Emotional Recall)**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특정 계절이나 날씨, 빛의 강도가
과거 감정과 기억을 불러오는 작용을 의미한다.

펫로스를 경험한 보호자들에게 계절은
단순한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함께했던 기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장치가 된다.

특히 사별 후 맞이하는 첫 계절
치유 과정에서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감정은

  • 기억의 왜곡 (좋았던 순간만 반복 회상)
  • 상실의 재확인 (그 아이가 진짜 없다는 현실의 실감)
  • 회복에 대한 저항 (계절이 바뀌는 것 자체가 ‘배신’처럼 느껴짐)

나 역시 그 흐름을 그대로 겪었다.
봄이라는 아름다운 계절을,
마음껏 느끼는 것이 괜히 미안하게 느껴졌고,
슬픔에서 벗어나려는 나를 내가 자책하기도 했다.

 

 

나는 결국 걷기 시작했다

봄이 완연해지던 어느 날,
나는 결국 너와 자주 가던 동네 공원에 나섰다.
처음엔 걷지 않으려 했다.
그 길은 너의 기억으로 가득했고,
그리움은 구체적인 풍경에서 가장 진하게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햇빛이 나를 붙잡았다.
햇살은 따뜻했고, 공기는 가볍게 흔들렸다.

그 길을 다시 걷는 것이
너를 배신하는 일처럼 느껴졌지만,
걷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너와 걷던 속도로 발을 내디뎠다.

너의 발자국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내 걸음 속에 남아 있었다.

 

 

봄은 다시 피어나고, 나는 조금씩 살아났다

공원 한켠에서 피어난 진달래를 보며
나는 조금 울었다.
그 꽃 아래에서 네가 뛰어놀던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고,
너의 털에 꽃잎이 붙어 있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웃고 있었다.

추억은 아픔을 동반하지만
그 아픔 속에서 따뜻함도 함께 떠오른다.

봄은 그런 계절이다.
차갑게 언 마음을
햇살로 녹여주고,
그리움의 틈에 작은 새싹을 틔우는 계절.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계절이 너와의 이별을 더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너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가장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게 해준다는 걸.

그게 바로 ‘살아있는 기억’이라는 걸.

 

 

계절이 바뀌는 것이 회복이라는 신호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계절이 바뀌면
이제 좀 괜찮아졌냐고 묻는다.
햇살이 따뜻해졌으니,
산책하기 좋은 날씨니까,
마음도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복은 절대로 계절과 함께 오지 않는다.

회복은 계절을 통과하는 내 방식으로 온다.

어떤 날은 다시 추운 겨울로 되돌아간 것처럼 느껴지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무기력하다.
반대로 어떤 날은
햇살 하나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 변화는 느리고 반복된다.
하지만 그 모든 흐름이
‘치유의 리듬’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봄의 루틴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올해 봄, 나는 다시 루틴을 만들기로 했다.
너와 함께하던 시절처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산책을 하고,
햇빛 아래에서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

너 없이 만들어가는 루틴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 루틴 속에 너의 자리를 남겨두었다.

산책 길에는 너와의 사진을 마음으로 떠올렸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는
너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그게 나의 방식이었다.
회복은 없어진 것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새로운 형태로 채우는 일이니까.

 

 

다시 살아가는 계절의 기록

이 봄은 여전히 어렵다.
여전히 익숙했던 순간에 눈물이 나고,
여전히 네가 그리운 시간은 많다.

하지만 나는 이전보다 덜 무너지고,
이제는 그리움 속에서 ‘숨 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봄이 다시 올 때마다
나는 네가 남겨준 계절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 안에서
내 일상을 조금씩,
조용히 살아낼 것이다.

너 없는 봄이 처음이었고,
그건 앞으로의 모든 계절을 다시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배우고 있다.
그리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