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웠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직후, 내 마음속에는 커다란 빈자리가 생겼다.
하지만 그 자리를 곧바로 누군가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또 다른 아이를 들이면, 그건 배신 아닐까?’
‘내가 널 그만큼밖에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이런 생각들이 나를 계속해서 멈춰 세웠다.
인터넷에서 “펫로스 후 새로운 반려동물을 입양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여러 번 보았다.
대부분은 ‘시간이 해결해줄 거예요’, ‘준비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라는 조언을 한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그 준비가 된다는 건,
죄책감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강아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여전히 너를 보내지 못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네 사진을 넘기다 문득 멈춘 순간
나는 매일 밤 너의 사진을 봤다.
웃는 얼굴, 졸고 있는 모습, 함께한 여행지에서의 장면들.
어느 날은 오래된 사진을 넘기다가 문득 멈춰 섰다.
그리고 ‘지금 만약, 다른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버렸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이건 안 돼’라는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너였다.
너는 여전히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살아 있고,
내가 누구와도 새로운 시작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했다.
‘과연 너는 정말 그런 마음일까?’
나는 그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너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너 없는 지금은 너의 마음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누구를 위한 죄책감인가
‘또 다른 강아지를 입양하면 너에게 미안할 것 같아’라는 말은,
어쩌면 너를 위한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 자신이 아프지 않기 위한 방어일지도 모른다.
나는 너의 죽음을 아직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새로운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너를 놓는 일 같았기 때문에,
너에게 미안하다며 스스로를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그 죄책감은 너의 슬픔이지, 걔가 널 탓해서 생긴 게 아니야.”
그 말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나는 정말로 너에게 미안해서 주저했던 걸까?
아니면 너 없는 일상에 적응하기 싫어서,
또다시 상실을 겪는 일이 두려워서 멈춰 서 있었던 걸까?
회복이란 ‘잊음’이 아니라 ‘안고 가는 것’
나는 이제야 조금 이해한다.
회복이란 건 슬픔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 슬픔을 나의 일부로 품고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너는 내게 많은 걸 남겼다.
사랑하는 방법, 기다리는 마음, 눈빛으로 통하는 언어.
그 모든 것은 내가 다음 생명을 만날 때,
좀 더 다정하게, 조금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들이다.
내가 너를 정말 사랑했다면,
그 사랑을 더 넓게, 더 따뜻하게 쓰는 건
너를 배신하는 일이 아니라,
너로부터 배운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점점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다음 반려견을 입양하는 것은
너를 잊는 일이 아니라,
너와의 기억을 바탕으로
또 하나의 사랑을 시작하는 일일 수 있다고.
다시 준비된다는 것의 의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반려견을 들이는 것이 단순한 선택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건 슬픔을 끌어안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고,
내가 지금 어디쯤 회복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다.
입양을 고민하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매일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감정이 너에 대한 그리움인지, 아니면 혼자의 외로움인지?”
“내가 정말 사랑할 준비가 된 걸까, 아니면 단지 공허함을 채우고 싶은 걸까?”
이 질문들에 정답은 없었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내가 아직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준비된다는 건 ‘완벽한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가 남은 채로도 다시 마음을 열어볼 수 있겠다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생명을 처음 만났던 날
어느 날, 우연히 한 보호소의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작고, 눈망울이 유난히 깊은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 아이의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마음이 요동쳤다.
‘이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그동안 느껴왔던 죄책감보다 먼저 찾아왔다.
입양 신청서를 쓰면서도 손이 떨렸다.
정말로 이게 맞는 일인지,
너에게 부끄럽지 않을지.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켠에서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괜찮아. 네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 나도 받아봤잖아.”
입양을 결정한 그날 밤, 나는 너의 사진을 꺼내놓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내가 다른 강아지를 키우게 됐어.
하지만 널 잊은 건 아니야.
너는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있을 거야.
그 아이를 사랑하는 것도 너에게 배운 거니까,
조금만 지켜봐줘.”
마음이 다시 따뜻해지는 시간
처음 만난 그 강아지는 나를 경계했다.
너와 달리 낯가림이 심했고, 처음 며칠은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조급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부터 가까워지려고 애쓰지 않았고,
내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조심했다.
그 아이가 처음 내 무릎에 올라온 날,
나는 너를 떠올렸다.
너도 처음엔 그렇게 천천히 내게 다가왔었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랑은 다시 오는구나.”
사랑은 꼭 한 번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너에게 했던 사랑과는 다른 결로,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랑도
충분히 따뜻하고 진실될 수 있었다.
너와의 기억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아이를 더 섬세하게 돌볼 수 있었다.
그건 네가 내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죄책감이 아닌 감사를 선택하기까지
너를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눈시울이 뜨거워지지만,
이제는 눈물보다 감사함이 먼저 찾아온다.
너와 함께한 시간은 슬픔으로만 채워진 게 아니라,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깊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 시간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 덕분에 지금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죄책감을 느껴야 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나눌수록 옅어지는 게 아니라,
다음 사랑을 더 깊게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너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고맙다고 말한다.
너와 함께했던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사랑을 가능하게 했다고.
다시 시작한 삶, 그리고 너와 함께하는 또 다른 방식
새로운 강아지와 지내는 하루하루는
다시 리듬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함께 산책을 나가고,
너와 걷던 길을 다시 걸으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너 없는 시간에도 숨 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어쩌면 너는 여전히 내 곁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새로 만난 이 아이를 보며 웃을 때,
내가 예전보다 더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을 때,
너는 내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웃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그 사랑이 나를 다시 사랑하게 만들었다.
사랑은 그렇게 흘러가고,
잊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는 걸,
이제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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