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장례

그 아이의 SNS 기록, 삭제해야 할까 남겨둬야 할까 – 잊기와 기억 사이

raenews 2025. 7. 10. 21:12

사진첩을 넘기다 멈춘 순간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후, 누구나 한 번은 앨범을 열어본다.
산책하던 모습, 생일 케이크 앞에서 찍은 사진, 장난감을 물고 있던 순간.
사진을 넘기다 어느 순간 멈추게 된다.
그 아이의 마지막 사진에서 손이 멈추고,
화면 속 웃는 얼굴을 보며 눈물이 흐른다.

사진만이 아니다.
SNS 속에도 그 아이는 남아 있다.
태그된 게시물, 동영상, 짧은 문장 하나.
너무 행복해서 아무렇지 않게 올렸던 순간들이
이젠 볼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순간 고민이 시작된다.
“이걸… 지워야 할까? 아니면 그냥 두는 게 맞을까?”
기억은 남기고 싶지만,
슬픔은 반복하고 싶지 않다.

 

반려동물의 사진 삭제해야할까

디지털 기억은 지울 수 있을까

예전에는 반려동물과의 추억이 사진첩이나 손글씨 편지에 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과 SNS, 클라우드가 그 모든 기억을 저장한다.
우리는 그 아이를 매일 사진으로 기록했고,
때론 그 계정을 따로 만들어 따뜻한 일상을 나누기도 했다.

그 모든 기록은 물리적 흔적이 아닌, 디지털 감정의 저장소가 된다.
지우는 것은 클릭 한 번이면 되지만,
지우는 순간의 감정은 복잡하다.
“지운다는 건 잊겠다는 뜻인가?”
“기억하지 않겠다는 선택인가?”
그런 질문들이 반복된다.

그 아이는 내 삶의 일부였고,
기억은 살아 있었던 증거다.
기록을 지운다고 해서 마음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록을 지우는 행위는
그 아이의 존재를 스스로 무효화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남겨두면 덜 아플 줄 알았지만

어떤 보호자는 그 아이의 모든 사진과 글을
그대로 남겨둔다.
지우지 않고, 정리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서
그 사진들을 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록은 위로가 되기보다는
감정의 발목을 붙잡기도 한다.

“계속 보는 게 도움이 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어느 순간, 내가 앞으로 못 나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 아이는 떠났는데, 나는 아직도 그 안에만 머무는 기분이었어요.”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분명 사랑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그 사랑이 삶 전체를 붙들게 되면
현재와 미래를 사는 힘을 잃게 되는 위험이 있다.

지운다는 건 배신일까

반려동물의 SNS 계정이나 추억 글을 지우려 할 때
많은 보호자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얘를 지워버리는 것 같아.”
“이걸 지우면, 얘가 정말 사라지는 기분이야.”

이 죄책감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내면적 감정과도 관련이 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에도
그 사람 혹은 존재를 기억하고 지키는 방식이
남겨진 자의 사랑의 표현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움’은 곧 ‘배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기억은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진짜 기억은 마음 속에 있고,
그 아이의 존재는 스크롤 속이 아니라 당신의 시간 속에 남아 있다.

지운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지우는 것은 그저,
슬픔을 다른 방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일 뿐이다.

기억을 정리한다는 것의 의미

심리학적으로 ‘애도’는 몇 가지 단계로 설명되곤 한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하지만 현대 사회의 애도는 훨씬 복잡하다.
그중에서도 ‘정리’라는 단계는 가장 어려운 감정 작업이다.

정리는 잊는 것이 아니다.
정리는 끝내는 것이 아니다.
정리는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감정의 재배치다.

SNS 속 그 아이의 사진을
클라우드나 외장 저장소에 옮기고
계정은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바꾸는 것.
그런 행위들은 감정을 덜어내기 위한 방법이자
삶과 감정을 분리하는 연습이다.

지운다고 해서 비정한 것도, 차가운 것도 아니다.
그건 내가 이 슬픔을
나만의 방식으로 안고 가겠다는 뜻이다.

 

남겨둔다면, 어떤 방식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기억을 무작정 붙들고 있으면
그 자체가 고통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지우지 않되, 덜 들여다보는 방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SNS의 게시물을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해시태그나 위치 정보 등을 제거하고
사적인 공간으로 옮기는 방식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추억 앨범을 따로 만들어
SNS와 분리된 곳에 저장하거나,
종이 포토북으로 인화해 실제 감각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이러한 물리적·디지털적 거리두기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마구 새어나가지 않도록
나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적 경계선 만들기다.

“나는 그 아이를 잊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 기억이 나를 붙들지 않도록
이제는 조금 멀리 두고 바라볼게.”

이런 태도는 감정과 삶의 분리 훈련이자,
애도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지운 후에 찾아오는 두려움과 안도감

모든 기록을 정리한 후,
많은 보호자들은 당황한다.
생각보다 너무 조용해진 디지털 공간.
누르면 나왔던 사진이 없고,
댓글도, 좋아요도 사라졌다.

“내가 너무 차갑게 굴었나?”
“얘가 정말 없어진 기분이야…”

하지만 그 며칠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안도감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떠났구나’라는 현실감과 ‘이제는 살아야지’라는 책임감이
조용히 가슴 안에서 올라온다.

그 공백은 처음엔 아프지만,
곧 숨 쉴 공간이 된다.
기억을 남겨두는 것도 용기지만,
정리하는 것도 큰 용기다.
둘 다 옳다.
누가 어떤 길을 택하든,
그건 슬픔을 품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디지털 애도, 현대인의 새로운 장례문화

죽음을 글로 남기고,
사진을 저장하고,
댓글로 위로를 주고받는 일.

이 모든 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애도 방식이다.

과거에는 죽은 이를 추억하려면
집 안 어딘가의 상자나 액자를 열어야 했다.
이제는 스마트폰 화면 하나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고통을 반복하게도 하지만,
기억을 정확하게 마주하게도 한다.

‘장례’라는 것은 단순히 육체를 보내는 행위가 아니라
기억을 현실 속에 정리하는 감정의식이다.
SNS 속 그 아이의 기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결국 우리 삶의 슬픔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다.

지운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고,
남겨둔다고 해서 이별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나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 이후 내가 잘 살 수 있는가다.

남겨진 기억은 시간 속에서 의미가 된다

어느 날, 누군가는 그 아이의 이름을 잊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이름을 부른다.
내 폴더 속에도, 내 마음 속에도
그 아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니 언젠가 SNS 계정을 삭제하거나
사진들을 정리하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안다.
그 아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기억은 장소에 남지 않는다.
기억은 존재했던 방식과,
함께한 순간들 속에 남는다.

사진은 볼 수 없게 돼도
산책하던 거리,
발바닥 냄새,
밥 그릇 소리.
그 모든 게 시간 속에서 나에게 살아남는다.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보관 방식’이 바뀔 뿐이다.

나에게 맞는 애도의 언어를 찾아야 할 때

누구에게는 포토북이 위로고,
누구에게는 클라우드 삭제가 해방이다.
누구에게는 SNS 계정이 묘비고,
누구에게는 그 글을 올리는 것조차 버겁다.

그렇기 때문에
애도는 각자의 언어로 진행돼야 한다.

남들이 어떻게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워야만 회복하는 것도,
남겨야만 성숙한 것도 아니다.

“나는 나대로 그 아이를 기억하고 싶다.”
그 결심만 있다면,
그 어떤 선택도 괜찮다.

슬픔의 표현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고,
기억은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조용한 감정도 진짜고,
보이지 않는 애도도 완전하다.

결론 – 삭제와 보존 사이, 선택은 나의 몫이다

반려동물이 떠나간 자리.
그곳에는 사진과 글, 영상과 메시지가 남았다.
그 모든 기록을 마주하며
우리는 수없이 고민한다.

“이걸 지우는 게 맞을까?”
“지우면 내가 너무 냉정한 건 아닐까?”

하지만 사랑은 형식이 아니라 태도다.
지우는 것도 사랑의 방식이 될 수 있고,
남기는 것도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선택의 기준은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그 선택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달려 있다.

기억을 마주하며 울고,
정리하며 다시 걷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다시 살아간다.

잊지 않기 위해 남기든,
살기 위해 정리하든,
모든 보호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아이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