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장례

펫로스를 겪은 가족 구성원마다 슬픔을 다르게 표현하는 이유

raenews 2025. 7. 11. 21:00

같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냈는데, 왜 이렇게 다르게 슬퍼할까?

한 가족이 같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냈다.
모두가 슬펐고, 그 아이를 사랑했으며, 이별은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한 일들이 생겨난다.
어떤 가족 구성원은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어떤 이는 조용히 일상으로 복귀하고,
또 어떤 이는 전혀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상황은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 묘한 긴장을 만든다.
“왜 울지 않아?”
“벌써 잊은 거야?”
“너무 오래 끌고 가는 거 아냐?”
이런 말들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때로는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같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냈는데,
왜 이렇게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걸까?
그 이유는 단순한 성격 차이만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도 각자의 애도 방식은 구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펫로스 이 후 가족구성원의 각기다른 심리

 

애도 반응은 ‘관계의 깊이’가 아니라 ‘표현 방식의 차이’다

사람들은 흔히, 슬픔을 많이 표현하는 사람일수록
더 깊이 사랑했거나 더 아파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감정을 혼자 끌어안고 소화하는 중일 수 있다.

애도는 ‘정답’이 없는 감정이다.
누군가는 울음을 통해,
누군가는 침묵을 통해,
누군가는 일상으로의 빠른 복귀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다룬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애도 스타일’ 또는 ‘상실 반응 유형’이라고 부른다.
이 스타일은 성격, 애착유형, 역할, 심리 방어기제에 따라 달라진다.

즉, 슬픔의 크기가 다른 게 아니라,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족 내 역할과 애도 방식은 밀접하게 연결된다

펫로스를 겪을 때, 가족 안에서의 역할은 슬픔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을 가장 많이 돌보던 엄마는
잃어버린 책임감과 일상 리듬의 붕괴로 인해 심한 허탈감을 겪는다.

반면, 아버지는 그 슬픔을 감추고
‘가족을 다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감정을 억누를 수 있다.
아이들은 그 상황을 또 다르게 받아들인다.
자신이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
혹은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표현되지 않는 슬픔이 생긴다.

이처럼 각자가 감당하고 있는 역할과 심리적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표현되는 슬픔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표현되지 않은 슬픔은 오해를 만든다

슬픔은 표현되지 않으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구성원이
무관심하거나 냉정해 보인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 중 한 명이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것을 본 다른 사람은
“이제 그만 잊어야 하지 않겠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슬픔을 멈추게 하기보다는,
서로를 고립시키는 말이 될 수 있다.

슬픔은 감정 그 자체보다
‘그 감정을 누가 어떻게 받아주느냐’에 따라
회복 속도가 크게 달라진다.
가족끼리라도, 서로의 애도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펫로스를 겪는 4가지 애도 스타일

심리학에서는 애도 반응을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정서 표현형
    슬픔을 자주 말로 표현하거나 눈물, 글쓰기, 사진 등으로 감정을 드러냄
  2. 인지형
    죽음의 의미, 존재의 유한성 등으로 사고가 깊어지고 철학적 질문을 반복
  3. 회피형
    일상에 집중하거나 감정을 무시하며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려 함
  4. 통합형
    정서 표현과 인지를 적절히 혼합하여 감정도 표현하고 의미도 찾아가려 함

이 4가지 애도 반응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성향과 인생경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반응이다.
가족 간의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슬픔을 표현할까’를
비판이 아닌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가족 안에서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

펫로스를 겪은 가족 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가장 자주 나타나는 갈등의 시작은 ‘슬픔을 다루는 속도’가 다를 때다.
누군가는 3일째 울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일주일이 지나자 정상적으로 출근하며 웃기도 한다.
이 차이는 때때로 분노로 번진다.

“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너무 오래 우는 거 아냐?”
이런 말들은 슬픔의 방식보다
상대의 슬픔을 판단하는 태도 때문에 문제를 만든다.

한 어머니는 자신이 돌보던 반려견을 잃고 한 달간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그런데 대학생 딸은 일주일 만에 일상으로 복귀하며 친구를 만나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실망했고,
딸은 엄마의 냉랭한 태도에 서운함을 느꼈다.
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거리감은 명확하게 생겼다.

슬픔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고립을 만든다.
그 고립이 반복되면, 가족은 같은 슬픔을 겪으면서도 서로에게 멀어지게 된다.

조심해야 할 말들 – 가족이라도 모를 수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감정을 잘 읽어내고
적절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마디에 더 깊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특히 펫로스를 겪은 직후, 아래와 같은 말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 “이제 다른 강아지 입양하면 돼.”
  • “그래도 사람 죽은 것보단 낫잖아.”
  • “그 아이는 이제 좋은 데 갔어, 그만 슬퍼해.”
  • “네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야?”
  • “난 그렇게까지 슬프진 않던데…”

이 말들은 의도는 위로일지 몰라도
결국 슬픔의 크기를 재거나 줄이려는 말처럼 들린다.
애도에는 정답도 기준도 없고,
그것이 가족 구성원마다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보다 먼저 이해해야 한다.

서로의 회복 속도를 존중하는 자세

누군가는 유골함을 곁에 두고 오랜 시간 함께 지낸다.
누군가는 모든 물건을 하루 만에 정리해버린다.
이 두 사람 모두 틀린 게 아니다.
단지 회복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슬픔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속도는 절대 비교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가족끼리 서로의 회복을 도우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조언’이 아니라 ‘경청’이다.

“넌 왜 아직도 울어?”가 아니라
“아직 마음이 많이 힘들구나”라고 말하는 것.
“이제 그만 정리해야 하지 않아?”가 아니라
“정리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릴게”라고 말하는 것.

그런 태도가 가족 구성원을 서로의 슬픔에 연결해준다.
애도는 함께할 수 있는 것이고,
함께할수록 더 단단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슬픔을 나누는 방법은 함께 우는 것만이 아니다

가족 간의 회복은 꼭 함께 울고 추모하며
눈물로 애도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함께 식사하며 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산책길을 다시 걸으며 추억을 나누는 것,
같이 네가 좋아하던 음식을 해보는 것 등
작은 루틴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상 회복의 의식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묻어두기 쉽다.
하지만 “너도 많이 슬프지?”라고 진심을 담아 물어봐주는 어른의 태도는
그 아이에게 슬픔을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준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가족 안에서 감정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확신을 갖게 될 때,
사람들은 고립되지 않고, 함께 애도하고 함께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서로 다른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결국 중요한 건
슬픔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보다
슬픔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다.

가족 구성원 각각의 애도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오해와 감정 충돌을 줄일 수 있다.

때로는 말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가족이 말없이 같은 사진을 바라보는 시간,
함께 네가 자던 자리를 정리하는 시간,
그런 시간 속에서 서로의 감정을 조금씩 알아간다.

같은 반려동물을 사랑했던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다만, 그 표현이 다를 뿐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가족 모두의 감정을 위한 공간 만들기

펫로스를 겪은 가족에게는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은 거창할 필요 없다.
거실에 작은 추모 공간을 만들거나,
기억을 나눌 수 있는 노트 한 권을 두는 것도 좋다.
아이에게는 ‘편지 쓰기’ 같은 표현의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가족 모두가 애도의 시간을 가지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누구도 감정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만드는 공간
서로의 회복을 도울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은 단지 그 반려동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겨진 가족 모두가
서로의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펫로스는 함께 겪는 ‘감정의 성장’이다

이별은 사람을 고립시키기도 하지만,
그 고립을 서로의 존재로 메워갈 수 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성장 과정이 된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단지 한 존재를 떠나보내는 일이 아니라
사랑을, 애정을,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마주하는지를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구는 조용히,
누구는 격렬하게,
누구는 뒤늦게 아파한다.
그 모두가 옳고, 그 모두가 자연스럽다.

가족은 서로 다르게 슬퍼할 수 있고,
그 다름을 통해 함께 치유될 수 있다.
그것이 펫로스 이후,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